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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 | 그까짓것 언제나 있는 것, 오늘 뿐이겠나

wwj@_ 2025. 5. 23. 03:02

 

 

창고 깊숙한 곳에 보관되어 있던 대학시절 나의 일기장 속에서,

 

깨알 같이 옮겨 적어 놓은

어느 책의 귀한 구절들을 찾았다.

 


"그럴테지. 그리고 또 있네, 

나는 가끔 이런 생각도 한다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절대적인 건 몸이 갸날프고 금발머리를 한 아름다운 젋은 아가씨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

하지만 때로는 검은 머리의 소녀가 더 예뻐 보인 적도 있단 말이네. 

그뿐인가, 아름다운 새가 자유로이 하늘을 날으고 있는 것을 볼 때면,

바로 그것이 무엇보다도 아름답고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고 생각할 때도 있네.

 

그런가 하면 때로는 나비로 말하자면 날개 위에 빨간 무늬가 있는 흰나비 같이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그리고 어떤 때는 구름사이에 비치는 저녁 놀이 참 기묘할 때도 있네. 

만물이 빛나고 있지만 눈부신 것은 아닌데, 실로 순결하고 즐겁게 보일 때가 있으니까 말이야."

 

"참 옳은 말일세, 크눌프.

무엇이나 잘 어울리면 세상에는 아름답지 않은 것이란 없지"

 

"그렇지. 그런데 나는 또 달리 생각한 적도 있다네. 

즉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 언제나 기쁨을 주는 동시에,

또한 슬픔과 불안을 안겨 줄 때 아름다울 수 있다고 생각하네."

 

-크눌프, 그 삶의 세 이야기

 헤르만헤세. 

 


예전부터 나는 헤르만헤세의 책들을 좋아했었구나..

라고 생각해 본다.

 

취향은 잘 변하지 않는가 보다. 

그때로 돌아가면 더 잘 살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의 내 지혜가 그때의 나를 많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바로 이런 것이야. 아무리 아름다운 아가씨라 할지라도 때가 있는 게 아니겠나.

늙으면 죽지 않을 수 없겠지,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겠나.

나는 생각하네, 아름다운 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그대로 아름답다고 하면, 

처음에는 그것을 보고 기뻐할지 모르지만 

점점 냉정한 눈으로 보게 될 것이고 

그까짓것 언제나 있는 것, 오늘 뿐이겠나 하는 생각을 갖게 마련일걸세. 

이에 반해 나약한 것, 변하는 것을 볼 때 기쁨을 느낄 뿐 아니라 슬픔마저 느끼게 된단 말이야."

 

"그야, 그렇겠지"

"그래서 나는 밤하늘의 불꽃 만큼 아름다운 것을 알지 못한다네.

캄캄한 밤에 공중으로 올라가는 초록빛과 푸른빛 구슬빛이 가장 아름다와질 무렵에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사라져 가는 게 아닌가.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기쁨과 함께 불안을 느끼네. 

그것이 서로 맺어져 있기 때문에 그것이 순간적일수록 아름다운걸세.

그렇지 않은가?"